‘마사이(Maasai)’는 아프리카 동부 킬리만자로 인근에 사는 민족으로 빨간 망토와 귀를 뚫어 커다란 장신구를 달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마사이 남성들은 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아프리카의 초원의 사자와도 기꺼이 맞서 싸웁니다. 그래서 ‘마사이 전사(戰士)’라는 말은 용맹성의 상징어입니다.

 

이런 마사이족 보다 더 용맹한 이들이 있는데, 한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입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 2만5000여명의 선교사를 보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많은 해외 파송 선교사를 갖고 있습니다. 인구당 선교사 수는 1위. 아프리카 오지에까지 진출해 심지어 마사이 용사들에게 ‘복음 전파’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해외 선교사를 파송한 지 100년째인 올해 아프리카 탄자니아 현지에서 마사이족과 한국인 선교사의 ‘묘한 만남’을 목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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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자니아 아루샤에서 만난 마사이 주민들. 자신들의 거주지를 관광객에게 개방하고 입장료를 받는다

 

◇교회에서 예수 믿고 기도하는 마사이, 집에는 부인만 3~4명

 

탄자니아에 10만명 정도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마사이들은 최근 도시로도 진출했습니다. 탄자니아 동부 도시 아루샤(Arusha)를 비롯해 도시 곳곳에서 망토를 두른 마사이들을 봤습니다. 이들은 특유의 용맹함과 정직성 덕분에 주로 상점, 관저, 주택 등에 경비원으로 취직해 일합니다. 

 

현지에서 만난 한 선교사는 “외진 마을에 교회 경비원으로 마사이족을 고용했더니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다 때려잡으려고 마사이를 데려왔다’며 항의하더라. 그래서  마사이를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마사이족은 소나 염소 등을 키우는 유목생활만 하던 방식 대신 최근 수만평 옥수수 밭에서 농기계를 이용해 농사를 짓기도 합니다. 도시에서 마약 거래 같은 범죄에 연루되는 이들도 있고,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자신들의 거주지에 들어와 사진을 찍어주고 기념품을 파는 관광가이드로 돈벌이를 하는 마사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뿌리깊은 토속 신앙과 가치관은 여전한데, 이는 마사이족을 상대로 사역하는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고, 성경 공부를 하다가도 집으로 돌아가서는 부적(符籍)을 붙이고 기우제를 지내는 거죠.

선교사들이 가장 난감해하는 것은 마사이들의 일부다처(一夫多妻)제 생활입니다. 마사이는 보마(Boma)라고 부르는 가족 단위의 집단생활 거주지를 이루며 살고 있는데, 보마에서 가장 큰 집에는 가장 나이 많은 남자 가장(家長)이 삽니다.

 

나머지 집들에는 이 가장의 부인들이 한명씩 살고 있습니다. 가장은 밤마다 원하는 부인의 집에 가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자녀들은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결혼할 나이가 되면 보마를 떠납니다.

 

20년 전부터 탄자니아에서 마사이족을 상대로 사역하고 있는 박은순(여·59) 선교사는 마사이 생활 지역에 교회 9곳, 초등학교 1곳, 유치원 3곳을 운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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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자니아 아루샤의 마사이족 주거 지역에 한국인 선교사 박은순(맨앞 오른쪽 여성)가 세운 초등학교 아이들. 앞줄 왼쪽은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박 선교사는 “마사이들도 교회에 다니면서 부인을 여럿 두는 것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혼하지 말라는 것도 성경의 가르침인데 이미 얻은 부인과 헤어지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신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이후로는 더 부인을 늘리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부인이 세명인 사람에게도 세례를 준 적이 있지만 이런 사람들에게는 교회 직책을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실 교회에 나오는 마사이족 대부분은 여성입니다. 남성 우월주의가 워낙 뿌리깊기 때문입니다. 한 선교사는 “여기에서 여자는 가축보다 조금 나은 정도 지위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물론 최근 남성 신도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합니다. 빨간 망토를 두르고 허리에 칼을 찬 마사이 전사가 교회에 출석하는 모습을 언젠가는 볼 수 있을까요.

 

◇허허벌판에 종합대학 세우고 새마을 운동 보급… 한국인 선교사들의 '무한 도전'

 

탄자니아의 수도(首都)인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시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은지 안네(Nji Anne) 마을에서는 2009년부터 ‘새마을 운동’이 한창입니다. 은지 안네는 영국 신탁통치가 끝난 후 십수년간 버려진 땅으로 그곳 주민들은 과일을 채집해 배를 채우거나 그늘에 앉아 시간만 보냈습니다.

이진섭(60) 선교사가 2009년 이곳에 와 새마을 운동 중앙회와 협조해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보급하면서 주민들의 생활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잡초가 우거진 풀밭을 개간해 벼를 심어 마을에 필요한 식량 절반을 자급하게 됐고, 옥수수와 파파야도 경작합니다. 주민들은 나무를 쳐내고 돌을 골라 대로까지 14km에 이르는 길을 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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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자니아 다레살람 근처 은지 안네 마을에서 주민들이 녹색 새마을 운동 조끼와 모자를 하고 있다. 검은 상의 입은 한국 남성이 이진섭 선교사.

 

 현장에서 보니 주민들은 실제로 아침마다 ‘새마을’이란 구호를 외치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녹색 ‘새마을 운동 조끼’와 ‘새마을 모자’까지 쓰고 있더군요. 주민들은 “한국이 새마을 운동으로 잘살게 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진섭 선교사는 “은지 안네를 처음 찾았을 때, 이 마을 사람 3800여명 중의 99%는 이슬람교 신자였는데 그후 5년째인 지금도 이슬람교인 숫자는 그대로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마을 사람들에게 개신교를 믿으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유를 묻자 “이것이 선교 전략”이라고 하더군요.

 

그는 “나는 개신교를 선교하러 이곳에 왔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말로 설명하지 않고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선교 전략이라 믿기 때문에 기독교 이야기는 이들이 물어올 때까지 먼저 꺼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진석 선교사가 은지 안네에서 새마을 운동을 시작할 때 주변에서는 다들 ‘미쳤다’고 했답니다. 이슬람 신자들을 상대로 개신교 선교가 쉽지 않으리란 선입견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의 진짜 ‘무모한 도전’은 따로 있습니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시의 허허벌판에 종합대학을 설립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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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세워진 탄자니아 연합대학교에서 설립자 이진섭 선교사 (왼쪽에서 세번째 검은 상의 남성)와 장성근 총장(붉은 넥타이 한 남성) 등 학교 관계자들.

 

이진섭 선교사가 20년여간 준비해 세운 탄자니아 연합대학교(United African University of Tanzania)는 작년 9월 개교했습니다. 약 125만㎡(38만평) 부지에 들어선 종합 대학이지만 아직 전교생이 6명 뿐입니다.

 

열린사이버대 총장 출신의 장성근(69) UAUT 총장을 비롯해 교수진과 교직원 30여명은 모두 무보수(無報酬)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자금을 지원하는 곳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2016년까지 학생 4000명을 유치한다는 목표가 확고합니다. 이쯤 되면 한국 개신교 선교사들은 용맹함을 넘어 '무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텅빈 들판에 종합대학을 세우고, 검은 피부의 마사이들이 '새마을'을 외치는 모습을 보니, 어쩌면 이들의 꿈이 곧 현실화될 것이라는 가능성도 엿보였습니다.

 

입력 : 2013.09.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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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혁 사회부 기자

 

출처 :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22/2013092200722.html?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