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Live |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 입력 2013.09.05

지난 8월14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라바 광장에서는 군부에 억류되어 있는 무르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 시위가 열렸다. 이슬람 강경파인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한 이 시위로 광장 전체가 군중으로 가득했다. 그 맞은편에서는 탱크와 불도저를 앞세운 이집트 군이 총을 움켜쥐고 군중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위대가 "신과 우리는 무르시 대통령을 지지한다" "무르시를 석방하라" 같은 슬로건을 외치며 열광할 때 군인들의 대오가 부산해졌다. 일제 총격을 위한 준비였다. 시위대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대학생 아짐 씨(21)는 이렇게 증언했다. "우리가 구호를 외치고 있을 때 군인들이 총격 준비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총을 쏘기 시작했다. 맨 앞줄부터 사람들이 총을 맞고 쓰러졌다. 불과 5분도 안 되어 내 주변엔 시신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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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 이집트 군부의 실세로 떠오른 엘시시 국방장관이 7월24일 군부와 경찰을 지지하는 대규모 집회에 참석해달라는 연설을 하고 있다.

 
긴박했던 그 순간 시위대 중 상당수는 인근의 알아다위아 모스크(사원) 쪽으로 도주했다. 군인들은 달려가는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퍼부었다. 친구의 시신을 메고 도망가다 쓰러지는 젊은이도 있었다. 카이로 대학 앞의 나흐다 광장에서도 이집트 군이 시위를 진압하던 중 일부 시민이 숨졌다.

 

이틀 뒤인 8월16일은 무슬림(이슬람 교도)들이 모스크로 예배를 가는 날이었다. 격한 시위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었다. 시위대는 이날을 '분노의 날'이라 불렀다. 심상치 않던 예감은 적중했다. 모스크에서 예배를 본 뒤 무르시 지지파는 군경과 충돌해 이날 하루 최소 215명(민간인 208명, 군경 7명)이 사망했다. 이 중 시신 104구는 카이로 도심 람세스 광장 인근의 파테 모스크에서 발견됐다. 알렉산드리아·민야·포트사이드 등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집트 보건부 집계로는 라바 광장과 나흐다 광장의 농성장에서 8월14일에는 638명, 금요 예배 직후 군경과 시위대가 충돌한 8월16일에는 최소 173명이 숨졌다.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무르시 지지파들은 대학살에 망연자실했다. 공포가 전국을 휩쓸었다. 다시 시위대를 결집시키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무슬림형제단의 간부인 압둘카림은 격분해서 말했다. "모스크와 병원에 밀려드는 시신을 보고 우리는 피가 솟구쳤다. 최후의 한 사람까지 그들이 다 죽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군부는 사람이길 포기했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에 반대하는 시민들도 결집했다. 이들은 모스크 밖에 모여 "신이시여, 무르시와 그 지지자들에게 복수를 내리소서"라고 외쳤다.

 

결국 무슬림형제단도 보복에 나서 카이로 남부에 있는 민야 지역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8월14일 하루 동안 70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16명이 경찰이었다. 민야 지역은 '이집트 기독교'인 콥트 교도들이 밀집해 사는 곳이다. 콥트 교도들은 무르시 축출에 찬성했다. 무르시파들이 콥트 교회와 이들의 가게를 덮쳐 또 다른 학살을 자행한 이유다. 민야 지역에 사는 가정주부 아밀라 씨는 "골목 곳곳에 총을 든 괴한들이 활보하고 있어서 기독교인들이 집 밖을 나가지도 못한다. 학살당한 무슬림형제단이 우리에게 보복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두려움에 떨었다. 결국 1600여 년 콥트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이집트 교회가 주일 예배를 취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쿠데타 명분 내준 무르시 정권

 

이집트인들은 2011년 민주화 시위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30년 독재를 끝장냈다. 일명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시민혁명은 성공적으로 완수된 듯 보였다. 문제는 무바라크의 빈자리를 채운 집단이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무슬림형제단이라는 데 있다.

 

1928년 무슬림형제단을 창설한 사람은 저명한 이슬람 학자 하산 알반나다. 창립 목적은 이집트를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목적 외에도 무슬림형제단은 병원과 학교 건설 등 빈곤층에 대한 관심과 지원으로 아랍권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1954년 무슬림형제단은 가말 압델 나세르 전 대통령 암살 기도의 배후로 주목받은 뒤 무바라크에게 탄압당하면서 오랜 세월 숨죽이듯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었다. '아랍의 봄'을 계기로 무바라크가 퇴출되자 무슬림형제단은 자유정의당을 창당하며 정치 무대 전면에 나섰다. 그리고 창설 80년 만에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이집트의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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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 이집트 어린이들이 엘시시 국방장관의 사진을 밟은 채 무르시 대통령의 사진을 높이 들어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르시 대통령과 무슬림형제단은 승리감에 취해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과는 정반대의 길로 갔다.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은 '파라오의 헌법'이라 불리는 극단적 이슬람주의를 지향하는 법을 하나씩 제정했다. 무르시는 정치 통합에도 경제 재건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오직 이슬람의 원칙을 국민에게 강요하고 싶을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민심이 정권을 떠났고, 시민들은 다시 민주화와 무르시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이 결국 이집트 군부에 쿠데타의 명분을 준 것이다. 군부는 반(反)무르시 여론을 등에 업고 대통령을 체포했으며, 이에 항의하는 무슬림형제단의 시위에 학살을 감행한 것이다.

 

군부는 학살 이후에도 명분을 들이대며 큰소리를 치고 있다. 강경 이슬람주의로 국민들의 삶을 억압하려는 무르시 일파를 군부가 대신 응징했다는 것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이집트 국민의 군부에 대한 지지도가 꽤 높은 편이다. 이집트 야권 세력 연합체이자 민주화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인 '타마로드'도 군부를 옹호하고 나섰다. 마흐무드 바드르 '타마로드' 대변인은 로이터 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군부를 감싸고 나섰다. "군부에 무슨 잘못이 있나. 최근 유혈 사태는 무슬림형제단을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 이집트 시민들이 치러야 할 비싼 대가였다." 시민단체 활동가인 이브라힘은 이번 사태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이번 학살은 무슬림형제단이 자초한 것이다. 그들 지도부는 군부가 총을 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자와 아이들을 방패로 앞세워 시민들을 라바 광장에 밀집시켰다. 희생양을 만들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다시 키우려는 계산으로 보인다."

 

무르시 집권 이후 이슬람 원리주의는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집트 군부가 국제사회의 빗발치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이유다.

 

이집트 군부의 실세는 압델 파타 엘시시(57)이다. 그는 지난해 8월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후세인 탄타위의 뒤를 이어 국방장관에 임명된 뒤 군부를 이끌어왔다. 영국과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엘시시는 이집트 군부 내 대표적인 미국통이며 뛰어난 연설 실력과 카리스마로 군부는 물론 국민에게 신뢰를 받는다. 그는 무르시 지지 시위대와 무슬림형제단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했으며, 민심을 읽어 국민들의 바람막이를 했다고 자처한다.

 

그러나 군부와 엘시시에게는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다. 이번 쿠데타 이전의 이집트는, 민주화운동 세력과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그런데 군부가 나서 무슬림형제단을 폭력으로 압살한 것이다. 이는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한 암묵적 위협이기도 하다. 최근 군부가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석방한 것도 민주화운동 세력들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엘시시는 권력에 도취한 인물"

 

결국 어떤 세력이 이집트의 권력을 장악하게 될까? 엘시시는 텔레비전에 출연해 '권력에 욕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무도 엘시시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는 누가 뭐래도 현재 이집트 권력의 핵심이며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하다. 미국의 한 안보 전문가는 "엘시시는 이집트의 명백한 실세다. 그가 대통령이 되든 간접 통치를 하든 이집트는 그의 손에 있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달 초 이집트를 방문한 린지 그레이엄 미국 상원의원은 < 뉴욕 타임스 > 와의 인터뷰에서 엘시시를 '약간 권력에 도취한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대학살을 겪은 무슬림형제단은 향후 활동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학살로 인해 무슬림형제단과 알카에다 등 급진 이슬람 단체들 간의 연결이 더욱 촉진될 수도 있다. 실제 이들의 시위장 곳곳에는 알카에다 깃발이 나부끼기도 했다.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무슬림형제단 구성원들은 더욱 과격한 이슬람주의자로 변신해 '지하드(성전) 전사'가 될 수도 있다. 이집트가 앞으로 더 많은 시련을 겪을 수 있다는 징조다. '아랍의 봄'은 서방세계가 예측했던 것보다 더욱 더디게 진행 중이다.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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